Skip to content

Posts "종의 기원을 읽다"를 읽다 #
Find similar titles

종의 기원을 읽다라는 책을 읽었다.

양자오라는 학자가 쓴 종의 기원 해설서이다. 좋은 내용도 많았지만 잘못된 내용들이 많아서 추천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가 있는 부분들을 몇 군데 인용해봤다.

사회 다윈주의 비판 #

사회 다윈주의를 비판하고 있는데, 사실 관계도 잘못되었고 논리 전개도 잘못되었다:

다윈(Charles Darwin)의 자연선택설은 항상 오해되고 과도한 추론을 낳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다윈이 원래 종의 기원에서 말한 자연선택은 동일한 종 사이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개념을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의 진화표 및 라마르크가 주장한 진화 방향과 결합시켜 서로 다른 종 사이의 경쟁으로 바꿔 놓았다. ... 하등 생물일수록 쉽게 도태되고, 고등 생물은 하등 생물을 도태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등 생물을 도태시킬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p159~160

우선, 다윈의 자연선택을 위한 생존경쟁은 동일 종 사이의 경쟁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종의 기원에서 원문을 인용해보자:

I should premise that I use the term Struggle for Existence in a large and metaphorical sense, including dependence of one being on another, and including (which is more important) not only the life of the individual, but success in leaving progeny. ... A plant which annually produces a thousand seeds, of which on an average only one comes to maturity, may be more truly said to struggle with the plants of the same and other kinds which already clothe the ground. ... In these several senses, which pass into each other, I use for convenience sake the general term of struggle for existence.

초판본 3장 중에서.

다윈이 같은 종일수록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고 적기는 했으나, 다윈이 말한 생존경쟁이나 자연선택이 "원래" 동일한 종에 사이의 경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다른 종 사이의 경쟁으로" 바꿔 놓은 것은 아니다. 위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다윈은 자연선택과 생존경쟁을 1) 종 내의 경쟁, 2) 종간의 경쟁, 3) 유기체가 아닌 환경과의 경쟁(struggle은 원래 부대낀다는 뜻이라 "환경과의 경쟁"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원 뜻으로는 이상하지 않다)까지 포함하는 대단히 넓은 의미로 사용했다.

그런데 사실 관계를 사소하게 잘못 전한 점보다 더 큰 문제는 논리 전개이다.

저자가 말한대로 사람들이 다윈의 이론을 오해했고, 원래 다윈은 동종 사이의 경쟁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치자. 고등 생물, 하등 생물 등을 언급하는 라마르크 진화표도 걷어내자.

그러면 남는 것은 1) 종간 경쟁 대신 종 내에서의 경쟁, 2) 절대적 우열이라는 서열 대신 환경에의 적응도라는 서열, 이렇게 두 가지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만 가지고도 똑같이 잘못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가 아래와 같이 주장하면 어쩔텐가?

사람들 사이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도에 차이가 있다. 적응도가 높은 사람은 적응도가 낮은 사람을 도태시킬 권리를 가진다.

사회 다윈주의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위와 같은 논리 전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점진론을 대체한 돌연변이설? #

다음 인용에서 저자는 다윈의 점진론을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수많은 자료를 통해 종의 변화의 원동력이 다윈이 말한 점진적이고 미세한 변화의 측적이 아님이 밝혀졌다. 다윈이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 중요한 과학의 돌파구에는 멘델의 유전학은 물론 훗날 발견된 유전자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 포함되어 있다. ... 기린은 사슴 중 어떤 개체가 생식 과정 중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출현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 따라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생물 진화의 동기나 동력은 미세한 변화의 축적이 아니라 돌연변이에서 생겨난다. 후대 사람들이 다윈의 진화론에 가한 중대한 수정이 이것이다. 다윈은 돌연변이를 몰랐으므로 과도기의 종을 해석하는 문제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과도기가 없었던 것은 갑자기 목이 길어진 기린이 자연선택에서 우세를 차지한 뒤 더 많은 자손을 번식했기 때문이다. --p168~171

또다른 인용을 보자:

다윈은 모든 진화가 미세하고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했지만 어떻게 이런 변화가 훗날 진화에서 우위를 차지할지 예견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처음에 나타난 사소한 변화는 분명 진화에서 우세한 특징을 보이기 어려운데 왜 유전되어 쌓이고 확대되는 것일까? 많은 생물학자들이 계속해서 이 문제를 파고들다가 20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돌연변이설이 등장하면서 다윈의 점진적 진화를 대체하게 되었다. 돌연변이설은 변화와 유전을 설명하는 데 점진적 진화보다 설득력을 얻으면서 어떤 변화가 진화 과정에서 우위를 차지하는지에 대한 해석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p195~196

1930년대까지 멘델의 유전학과 다윈주의가 충돌했었다는 사실이나, 그 후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는 이름으로 조화를 이룬 점 등은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위에서 설명하는 "돌연변이설"이 무엇인지, 그게 다윈의 점진적 진화이론을 어떻게 대체했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과도기 화석이 남지 않은 이유는 바로 "돌연변이" 때문에 목이 한번에 길어졌기 때문이라는데, 나는 여지껏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나마 비슷한 주장을 억지로 찾아보자면 Stephen Jay Gould단속평형론이 있다. 단속평형론은 진화라는 것이 항상 꾸준한 속도로 일어난다기보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일어나다가 이 기간이 끝나면 오랜 기간 동안 큰 변화가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식의 패턴을 보인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이란 대략 5만년에서 10만년 정도를 말하는 것이지 갑자기 돌연변이(위 인용에서 저자가 말하는 "돌연변이"라는게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가 생겨서 한세대 혹은 두어세대만에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굴드를 긍정적으로 여러번 인용한 점으로 미루어볼때 어쩌면 이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위 설명을 천천히 읽어보면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단속평형론을 말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 혹시 Saltationism 같은걸 주장하는 중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을까? 그것도 어렵다. 기린 목의 해부학적 구조는 단순히 뼈만 잡아 늘린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긴 목 위에 달린 뇌로 혈액을 올려보내려면 심혈관계의 진화가 받쳐줘야 한다. 평균 심박수가 150bpm이고, 목을 낮췄을 때 혈압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도 있다. 반대로 다리 아래 쪽의 혈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부가 두껍고 탱탱하게(즉, 압박붕대 역할을 하도록) 진화됐다. 그 밖에도 얼굴을 수직으로 세워서 더 높은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절 또한 변화되어있다. (위키피디아 참고)

"생식 과정 중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이런 온갖 적응이 출현했다는 이론이 대체 언제 다윈의 진화론을 대체했다는건가?

도킨스와 윌슨의 유전자 선택설? #

다음 인용을 보자:

생물학계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타 행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해석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러다가 도킨스(Richard Dawkins)와 윌슨(Edward Wilson)이 비로서 중대한 돌파구를 열었다. ... 도킨스와 윌슨은 진화의 단위가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한 가지 사소한 오류와 다른 한 가지 중대한 오류가 있다.

사소한 오류는, 유전자 선택설은 도킨스와 윌슨이 아니라 W. D. 헤밀턴(William Hamilton)의 이론적 토대에 기반하여 G. 윌리엄스(George Williams)가 주장한 것이라는 점, 도킨스는 단지 이기적 유전자라는 대중교양서에서 이들의 이론을 쉽게 풀어쓴 사람일 뿐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것도 훌륭한 업적이다)

좀 더 아쉬운 점은 윌슨(Edward Wilson)은 (내가 기억하기론) 최근 10년 이상 유전자 선택설(정확히는 Inclusive fitness 이론)을 반대하는 주장(집단 선택 또는 다단계 선택)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윌슨의 주장이 맞는지, 이 논쟁이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 판단할 지식은 없으나 적어도 윌슨의 최근 논문 및 저서에 대한 도킨스의 리뷰를 읽어보면 "도킨스와 윌슨"이라고 쉽게 묶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설픈 자연주의 오류 비판 #

책 뒷부분에서 저자는 진화심리학 내지는 사회생물학 연구를 소개하고 있다. 책 전체에 걸쳐서 래퍼런스가 전혀 없어서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언급을 해주는게 어딘가.

진화심리학 관련 연구를 소개하는 맥락에서 독자들이 자연주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지극히 올바른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 논리는 해괴하기 그지없다:

첫 번째 함정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어설픈 오용이다. 예를 들면 진화의 측면으로 봤을 때 남성이 여러 여성을 넘보는 것에 일리가 있다며 남성이 이런 행동을 해도 용납된다는 생각이다. ... 그러나 ... 진화에서 나타난 우세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밝혀둔다. ... 우리는 단지 역동적인 과정 안에서 우세 혹은 열세를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 또한 우세와 열세는 환경 변화와 관련이 있다. 서로 다른 환경 조건 아래서 본래는 우세였던 것이 열세로 바뀌기도 한다. ... 불티나게 팔리는 과학 관련 서적에서 만약 저자가 이것이 우세이고 저것이 열세라고 단정 지어 말하며 역동적인 분석을 결여하고 있다면, 그 책을 한쪽으로 치워 두도록 하자.

--p273~275

자연적인 현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은 지극히 옳다. 그런데, 위 설명이 담고 있는 논리는 엉터리이다.

"남성이 바람을 피워도 된다"는 주장에 우리가 반대해야하는 이유는 그 소위 "우세"가 절대적이지 않고 일시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만약 그 "우세"가 절대적인 것이라면 바람을 피우는게 정당화되는 것인가?

"남성이 바람을 피우는 것은 진화적으로 자연스럽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주장은 그 "우세(또는 자연스러움)"가 일시적이기 때문에 틀린 게 아니라, 사실 명제(우세가 존재한다 내지 자연스럽다)만으로부터 가치 명제(정당하다)를 끌어내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

마치며 #

이런 편견은 참 좋지 않는데, 인문학자가 쓴 자연과학분야 해설서는 대체로 읽을 것이 못되는 것 같다. 이런 편견을 불식시켜줄 좋은 책을 한번 쯤 만나봤으면 좋겠다.

Suggested Pages #

Other Posts #

0.0.1_20140628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