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Posts 총, 균, 쇠 비판 비판 #
Find similar titles

총, 균, 쇠 비판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나는 이 비판이 "총, 균, 쇠(이하 GGS)"의 내용에 대한 깊은 오해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오해는 설명을 변호로 혼동한 것, 두번째 오해는 인과 관계의 복잡성을 간과하고 GGS의 주장을 단순히 환경 결정론으로 치부한 것이다.

참고로, "총, 균, 쇠"를 아직 안 읽은 사람은 [독후감] 총, 균, 쇠를 읽어보기 바란다.

설명과 변호의 혼동 #

다음은 "총, 균, 쇠 비판"에서 인용한 글이다:

대체 문화의 발달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술의 발달이란? 총을 만든 것? 아니, 사회구조나 농경이라는 측면에서 잉카는 그 지역에 가장 적합한 문명을 가꾸었다.그들은 심지어 윗동네 아즈텍과 상당히 잘 지내는 방법도 터득했다. 유럽은 결코 터득하지 못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두 문명의 격차가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 말에는 문명간의 격차가 어마어마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건 마치 상당히 잘 짜이고 환경에 적합하게 잘 만들어져 있는 집에 웬 난봉꾼이 총을 들고 사람들을 다 쏴 죽인 후, “오 이런 야만인들, 총이 없다니!” 라고 소리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세상에, 어떻게 그들은 총이 없을 수 있지?” 라고 하며 그 집이 세워진 땅을 마구 훑어보고, “이곳은 우리 집과 같은 토양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총이 없지!”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놈도 총을 다른데서 받아온 것이면서 말이다.

이 비판이 타당하려면 GGS에 "현대 유럽인들의 문명이 수렵채집 문명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주장이 없다는 것은 서문만 읽어도 알 수 있다. 다음은 GGS 서문에서의 인용한 글이며 번역은 내가 하였다:

This objection rests on a common tendency to confuse an explanation of causes with a justification of acceptance of results. (이 반론은 원인에 대한 설명을 정당화 혹은 결과에 대한 수용과 혼동하는 일반적인 경향에서 비롯된다.)

...

Far from glorifying peoples of western European origin, we shall see that most basic elements of their civilization were developed by other peoples living elsewhere and were then imported to western Europe. (서구 유럽에서 유래한 사람들을 찬양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 문명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이 다른 곳에서 살던 사람들에 의해 발달된 것이며 그 이후에 서구 유럽으로 수입되었을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

I do not assume that industrialized states are "better" than hunter-gatherer tribes, or that the abandonment of the hunter-gatherer lifestyle for iron-based statehood represents "progress," or that is has led to an increase in human happiness. (나는 산업화된 국가들이 수렵채집 부족들에 비해 "더 좋다"고 가정하지 않으며, 수렵채집 생활양식을 버리고 철기 기반의 국가로 전환한 것을 "진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이러한 전환이 우리의 행복을 증대시켰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위 모든 문장은 서문(개정판 서문이 아니래 원래의 서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책을 쓴 시절은 순진무구했던 1970년대가 아니다(E. O. Wilson 지못미). 이러한 종류의 오해에서 비롯된 헛소동들을 수도 없이 겪은 후에 저술된 책이며, 저자는 당연히 오해를 피하기 위해 온갖 서술에서 각별히 주의하고 있으며 자신은 설명을 하는 것이지 변호나 정당화를 하는 것이 아님을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언급하고 있다.

다이아몬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아래와 같다:

유럽 문명이 우세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유럽인들이 근본적으로 잘나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유럽 문명이 더 나은 생활양식인지도 확실치 않다. 오해하지 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는 생긴다. 설명과 변호, 사실 명제와 가치 명제를 혼동하는 오류를 피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의 논증에서 설명은 변호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동일한 죄를 저질러도 그 이유가 술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기 때문이라거나 불행한 어린시절 때문에 올바른 성격형성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식의 원인들을 끌어들여 변호를 하는 식.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설명과 변호를 구분하지 못하고 책을 읽으면 아래와 같은 오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총, 균, 쇠 비판"에서 인용한다:

그의 주장은 살펴보면, ‘유라시아는 농업에 유리했고 전파에도 유리했기 때문에 다른 대륙보다 우월했다. 이것이 우리는 총을 만들 수 있고 너희들은 못 만든 이유다.’ 라고 한다. ... 그는 유라시아라는 단어를 아주 독특하게 사용한다. ... 유라시아가 환경적으로 유리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메소포타미아와 중국을 언급한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중동을 주로 언급한다. 그곳의 작물이 어떻고, 가축은 여기 태생이고, 등등.

GGS에서 "유라시아 문명이 잘난 이유를 정당화하려고 한다"고 생각해며 책을 읽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오해와 잘못된 비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라시아의 환경이 농경 시작에 유리했다는 언급이 책에 있어야 할 이유가 당연히 없다. 애초에 위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유럽인이 세계를 지배해야하는 이유를 정당화하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정작 해야할 이야기는 하지 않고 딴소리만 한다는 비판이 많은데, 그것은 비판글 작성자가 애초에 저자의 의도를 오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결정론이라는 비판 #

"총, 균, 쇠 비판"에서 인용한다:

그는 결코 '문화'를 논지에서 끌어들이지 않는다. 모든 문화적 차이는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환경은 바로 궁극적 원인이다.

...

그는 문화가 아니라 환경이 문명의 발달을 결정한다고 했다. 이것은 결정론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같은 환경에서 다른 문명이 발달한다고 인정하는 순간, 환경은 부수적인 요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환경이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이다.’ 라는 이야기가 된다.

어떠한 주장이 결정론이라는 식의 비판은 대단히 흔하게 접할 수 있으며, 대부분이 (내가 접한 것 중에서는 전체가) 허수아비 비판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커피를 마시는 행동을 하고 있는 이유가 환경탓인지, 문화탓인지 따져보자. 나는 왜 지금 커피를 마시나?

  • 커피를 소비하는 문화권에 살아서 (문화적 이유)
  • 커피라는 액체를 마셔도 생명에 지장이 없어서 (생물학적 이유)
  • 지금 커피가 땡겨서 -> 약한 카페인 의존성 -> 커피를 소비하는 문화권에 오래 살아서 (생물학적 이유, 문화적 이유, 우연한 개인사, ...)

그런데 애초에 커피라는 음료가 존재하는 이유는?

  • 커피 열매가 존재하기 때문 (생물학적 이유 혹은 환경적 이유)
  •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를 탄생시켜서 (문화적 이유)

커피 열매가 존재하는 이유는?

  • 그러한 품종이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생물학적 이유 혹은 환경적 이유)
  • (현재와 같이 다양한 커피종이 있는 이유는) 인간이 품종 계량을 하였기 때문 (문화적 이유, 생물학적 이유, 환경적 이유)

인간이 커피 품종을 계량하여 세계 각지로 전파한 이유는?

  • 이미 인간이 커피 음료를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 (문화적 이유, 생물학적 이유)
  • 품종 계량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 (대체로 문화적 이유)
  • 커피 열매를 비교적 신선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어서 (환경적 이유, 문화적 이유, 생물학적 이유)
  • 돈을 벌고 싶으니까(생물학적 이유, 문화적 이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대세라 (문화적 이유, 생물학적 이유)

자, 내가 커피를 마시는 사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환경적인가, 생물학적인가, 문화적인가?

세상에 단일한 원인에 의해 특정되는 결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인과는 서로가 물고 물리며 얽혀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과 관계는 사실 얽힐 수 없다. 무언가의 결과가 다시 그 무언가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과를 "분류하여 묶어내는 순간" 인과의 사슬을 대단히 복잡하게 엮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인과 관계의 복잡한 사슬(정확히는 directed acyclic graph)을 그렸다고 가정하자. 오래된 사건들은 왼쪽, 최근 사건일수록 오른쪽에 있다.

이제 이 중 "문화"에 해당하는 사건들에 빨간칠을 하고, "환경"에 해당하는 사건들에 "파랑칠"을 해보자. 빨간칠을 한 대상들은 모두 왼쪽에 쏠려있고, 파랑칠을 한 대상들이 모두 오른쪽에 쏠려있다면 문화 결정론 혹은 환경 결정론이 참이라고 할 수 하다.

하지만 위의 커피 예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런 일이 일어날리가 없다.

그렇다면, GGS에서 "환경이 대단히 중요한 원인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위 인과 관계 사슬에 조금 더 상상력을 더해보자.

일단, 각각의 원인을 결과로 이어주는 화살표에 두께를 추가하자(정확히는 weighted directed acyclic graph). 이 두깨는 해당 원인이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나타낸다. 대충 아래와 같이 생겼다고 치자:

Image

숫자가 무게를 의미한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빨간칠된 노드와 파란칠된 노드가 뒤섞여 있는 그림으로 바꿔서 보길 바란다. (두께가 있는 dag 그림을 못 찾음. 그리기엔 시간이 아깝)

왼쪽 끝에 있는 동그라미는 모든 것의 원인인 "빅뱅"이라고 치자. 제일 오른쪽 끝에 있는 동그라미는 "뉴기니가 유럽 국가들보다 못산다"라는 결과라고 치자.

그 결과에 대하여 유일하게 "결정론" 딱지를 붙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빅뱅 결정론"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그저...

  • 저 복잡한 그래프 중 오른쪽 끝에 있는 동그라미에 비교적 많은 영향을 준 동그라미들이 대체로 빨간색인가, 대체로 파란색인가
  • 혹은 제일 오른쪽 끝 동그라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동그라미들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준 다른 동그라미들은 무엇인가 (즉, 좀 더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같은 이야기들일 뿐이다.

GGS에서 하는 이야기는 그래프 중간 어딘가에 있는 "환경"이라는 동그라미가 제일 오른쪽 끝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 강도가 굵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GGS에서 하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아래와 비슷하다:

Image

제일 오른쪽 동그라미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소들이 있는데, 그 요소들 중 많은 부분이 중간에 있는 특정 동그라미 및 거기에서 파생된 동그라미들(빨간점 찍은 동그라미들)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환경이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이라는 주장도 아니고, 환경 차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주장도 아니며, 환경 이외의 원인들이 없다는 주장도 아니다.

결론 #

책을 사면 서문을 꼭 읽자.

농담이 아니라 정말 중요하다. 서문을 읽어야 이 책이 무슨 주장을 하려고 하는지, 전체적인 구성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큰 틀을 이해해야 개별 장, 개발 단락, 개별 문장이 어떤 느낌인지, 이 사람이 지금 설명을 하는지 변호를 하는지, 특정 단어를 무슨 뜻으로 썼는지, 왜 하필 지금 저런 얘기를 하는지 등등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있어야먄 책에서 어떤 내용이 중요하고 어떤 내용이 곁가지인지 알 수 있고, 그래야 중요한 내용이 생략되지 않았는지도 따져볼 수 있고, 책에 담겨있는 오류들이 사소한 것인지 중대한 것인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Suggested Pages #

Other Posts #

0.0.1_20140628_0